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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수필과 시

첫눈이 내립니다

by 이은하수 2024. 5. 17.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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