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어떤 남자가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삿짐을 다 옮기고 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자는 더듬거리며 수북한 짐 사이에서 양초를 겨우 찾았을 때 '띵동' 하며 현관 벨소리가 들렸습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고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 아이의 말을 듣자 남자는 '이사 오자마자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고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하겠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양초가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돌려보내려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급하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이사 온 첫날부터 정전 때문에 불편하실 것 같아서 양초를 드리려고 왔어요!" 이 말과 함.. 2024. 4. 10.
봄 - 한용희 산 넘고 들 넘은 실바람 소리에 귀 기울인다 고향을 넘어온 저 구름은 무슨 소식으로 날 반기는지 기린목 되어 허공을 본다 푸른 내움에 붉은 꽃잎은 또 지구공전의 시작을 알린다 고목이 부식되어 한 귀퉁이가 으스러지듯 팔다리 저리고 이빨 헐렁거리고 제집 오르기도 숨이 차고 모래시계 흐르듯 조금씩 사십 대 후반이 무너져간다 봄은 이제 시작일진대 새롭게 출발인 지금 한 줌뿐인 정열과 의욕을 보듬어 안는다 남은 시간보다 살아온 뒤가 긴 것은 이제 늙나 보다 2024. 4. 7.